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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MBC 월화 미니시리즈(2006~2010)]



MBC 창사 49주년 특별기획 : 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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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시간 매주 월요일, 화요일 밤 9시 55분
방송 기간 2010년 3월 22일 ~ 2010년 10월 12일
방송 횟수 60부작[1]
채널 MBC
제작사 리더스콘텐츠컴패니, 이세중
연출 이병훈, 김상협
극본 김이영
출연자 한효주, 지진희, 이소연, 배수빈, 정진영
링크 공식 홈페이지
국내등급 15세 관람가

파일:MBC 로고_흰색.png파일:MBC 로고_흰색.png 연기대상
시청자가 뽑은 올해의 드라마
선덕여왕
(2009)
동이 '''
(2010)
최고의 사랑
(2011)

목차

1. 개요
2. 상세
3. 등장인물
4. 고증오류
5. 시청률
6. 평가


1. 개요

2010년 3월 22일부터 2010년 10월 12일까지 방영한 대한민국사극. 방송사는 MBC.

2. 상세


허준, 대장금, 상도, 이산 등으로 유명한 이병훈의 신작.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일대기를 그린다.

전형적인 이병훈 드라마[2]대장금의 그림자를 벗을 수 없었다는 평이 대부분이며 스토리 전개나 캐릭터 구도가 감독의 바로 전작인 이산과 거의 똑같다.[3]

극이 시작할 무렵 이병훈 PD는 대장금한국 요리처럼 장악원을 배경으로 조선의 궁중 음악을 소개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낸 바 있으나 극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서동요태학사와 마찬가지로 궁중 음악은 나오지도 않는다. 안습.

장희빈인현왕후에 비해 제대로 알려진 것이 적어 매체마다 조연으로만 오르내렸던 숙빈 최씨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방영 전부터 주목을 받았고, 이로 인한 새로운 해석이 기대 되었다. 실제로 장희빈은 비슷한 소재의 타 사극들과는 차별성을 띤 인물로 그려졌다.

초반의 장희빈, 장옥정(이소연 분)은 천한 신분에도 높은 뜻을 지닌 강하고 영리한 여성으로 그려졌으며 후에 그녀의 적이 되는 주인공 동이도 그녀를 흠모하고 존경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중반 이후 숙종의 마음이 동이에게 가는 것을 바로 옆에서 실시간으로(...)[4] 보게 되고 중전이 되기 위해 손을 더럽힌 후 본격적으로 악역이 된다. 하지만 악역이 된 후에도 천박하고 패악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끝까지 도도한 포스를 뿜어내며 동이 역의 한효주보다 더한 찬사를 받았다.

다만 장희재는 악랄함과 얌체스러움을 극대화하여 해당 배우인 김유석이 사람들에게 쓰레기같은 놈 취급을 받을 정도로 연출이 훌륭했다. 하지만 다른 장희빈 시리즈의 장희재들[5]에 비해 박력은 떨어졌다.

그 외에 장희빈에게 휘둘리기만 하던 숙종이 아닌 개그 캐릭터 능동적인 숙종이 등장하기도 한다. 자상하고 선량하며 영리한, 그야말로 훌륭한 왕으로 그려지기에 숙종 캐릭터가 의도치 않게 미화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하지만 기사환국과 갑술환국이 단순한 당쟁의 결과물이 아닌, 숙종의 의도된 숙청이었다는 주류학설에 맞춰 작중에서의 숙종도 중신들 머리위에서 당쟁을 이용해 환국을 일으키는 정치꾼다운 모습도 보인다.

역사교육과 출신인 작가가 쓴 사극인데도 정작 역사성은 찾아볼 수가 없으며 해도해도 너무한 수준의 역사왜곡이었다. 애초에 본편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점에서 진작 죽었어야할 명성왕후가 멀쩡히 살아있고, 명성왕후의 죽음 때문에 인현왕후가 모함받아 폐서인된다거나 하는 것부터 실제 역사 고증 따윈 안드로메다 저편으로 날아갔다.[6]

게다가 숙종 당대의 실제 신료들은 등장하지 않거나 이름이 변조되어 등장한다. 경종의 세자 책봉에 반대하다 사사당한 당대의 정치 거물 송시열은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나마 남인의 영수이자 우의정을 지낸 민암을 모델로 한 오태석이나 숙빈과 힘을 합쳐 인현왕후 복위에 힘쓴 인물인 김춘택을 모델로 한 심운택 정도가 있지만, 초반부터 암살, 살인사건으로 검계 vs 남인 드립을 치더니, 기어코 오태석은 일방적으로 동이에게 발리다가 같은 남인들에게 팀킬당하고[7], 심운택은 동이의 측근 3으로 전락해 비중이 병풍 수준. 동이에 나오는 조정은 동이와 장희빈의 일거수일투족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그 외의 정치 사안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연잉군이 태어난 이후로는 모든 캐릭터가 동이와 연잉군의 들러리로 전락한다. 이러니 동이 속의 조선은 실제 역사 속 숙종 대 조선이라기보다는 동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평행우주라고 보면 된다.(...)

여담으로 같은 소속사 때문인지, 한효주배수빈찬란한 유산 이후 또 다시 만나게 되었다.[8] 거기다 극중 관계나 포지션도 비슷하다? (고은성-동이, 박준세-차천수) 원래 배수빈이 맡은 차천수 역은 숙종과 연적이 되는 서브남주였지만, 숙종과 동이의 멜로가 강조되면서 동이의 측근 1 정도로 전락했으니 안습. 이병훈 PD도 종영 후 검계 쪽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깨방정 숙종 캐릭터가 대박을 치면서 차천수의 비중이 줄어든 것 때문에 배수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똑같은 이병훈 PD 작품인데 이산에서는 노론악의 축이었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노론이 동이의 지원군 역할을 하는 입장이라는 거다. 물론 그다지 도움은 안 되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드라마 속 정치 구도는 실제 숙종 시대 정치 구도와 많이 다르게 묘사된다.

또한 스리슬쩍 넘길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대궐에서 애지중지하던 숙빈 최씨의 옥가락지를 실제 소품으로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승은상궁이 된 이후부터 옥가락지를 끼기 시작하며, 이는 같은 이병훈 PD의 작품인 이산[9]과 시간선이 이어짐을 보여주는 장치.

2010년 10월 12일, 60회로 종영하였는데 대체적인 평은 "이병훈표 사극의 한계를 보여줬다."는 것으로 그다지 호평을 받진 못했다. 최고시청률은 29%, 꾸준히 20% 이상의 시청률을 보였으니 나쁘진 않은 편이지만, 지난 이병훈 사극들에 비하면 저조한 편. 또 후반부에는 강남개발사와 군부독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매회마다 호평을 받던 《자이언트》에까지 밀리기 시작했다. 《동이》 이전 이병훈 사극 중 30%를 못 넘긴 작품은 《서동요》 뿐이다. 이렇게 된 원인으론 사건->해결->또다른 사건->해결로 이어지는 구도가 식상해졌다는 것, 주인공인 동이가 완전무결한 선인에 무소불위의 초인으로 그려져 시청자들에게 가깝게 와닿지 못했다는 점 등이 꼽힌다.

그런데 동이와 이산의 포지션이 바뀔 경우 한 쪽이 극대화되는 반면 다른 한 쪽은 이보다 더 작아진다는 것.

여담이지만, 동이에서 의금부 포졸의 옷은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 호위무사의 옷을 그대로 입혔고 지방 관아 포졸의 옷 역시 선덕여왕에서 사량부 옷을 입혀 다른 사극의 복장과는 차별화를 뒀다. 하지만 포졸의 신라화. 적어도 다른 사극의 포졸복은 일명 국민 포졸복이라 하여 흰 한복 겉에 검은 조끼만 달랑 입고 신발도 짚신인 반면 MBC 사극의 포졸들은 이렇게 포졸인데도 비교적 화려한 옷을 입고 신발도 목화를 신었다.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한예조)가 '외주제작사가 체불한 소속 연기자들의 출연료를 MBC가 대신 지급해달라'는 요청을 했으나 MBC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2010년 9월 3일부터 한예조 소속 연기자들이 드라마 촬영거부에 들어갔다. 6일 오전 11시 30분 경 타결돼 촬영이 시작됐으나 당일 밤 10시에 방송까지는 약 10시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용인 세트장에서 서울 방송국까지 테이프를 옮길 시간을 줄이기 위해 생방송에서나 쓰던 위성중계차(SNG)를 동원했다. 그리고 정규방송에 성공했다. 남기남 : bb 녹화방송인 드라마를 송출하기 위해 중계차를 동원한 것은 국내에서 최초인듯.

여담으로 2010년 초에 MBC가 총 파업에 들어갔을 당시 이쪽에도 파급이 약간 있었는지 본편이 끝나고 다음회 예고로 넘어가기 전 붉은 꽃잎이 휘날린 뒤 배경이 바뀌는 효과가 사라지고 그냥 해당 회차의 마지막 장면[10]을 정지시켜 점점 클로즈업 되게만 해놓고 이 뒤로 주역들의 사진이 나오는 장면을 그냥 잘라서 이어붙여 편집해 상당히 어색해보였었다(...). 이 문제는 파업이 끝남과 동시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유투브에 전 편이 있으니 다시 보고 싶은 위키러는 검색해보자.

3. 등장인물


4. 고증오류

이병훈 PD의 허준, 대장금, 서동요 등은 기록이 많이 남지않아 상상력이 동원되었지만 숙빈 최씨의 경우, 실록에 기록이 남아 있는 부분이 있음에도 고증오류가 상당히 많다. 또한 권선징악을 주제로 삼는 PD의 특성으로 인현왕후서인, 노론을 선으로 설정하여 엄청난 미화를 희빈 장씨남인을 악인으로 설정하여 매우 많은 가상범죄를 지어냈다.

극중에서처럼 동이(숙빈)가 장악원의 노비 일을 하다가 감찰부의 궁인으로 승격된 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씨남정기(소설)에 의하면 숙빈이 어린 시절 인현왕후의 폐위를 안쓰러워하는 모습이 숙종의 눈에 밟혀 후궁이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말 그대로 소설이기 때문에 확실한 것은 아니다. 실록에서는 그저 궐 내 무수리일을 하다가 숙종의 승은을 입은 것이 전부이다.

  • 명성왕후 승하 시기와 사인
명성왕후는 1683년 12월 5일(이하 모두 음력)에 승하했고[11] 장희빈은 명성왕후 사후 3년상이 끝나고 나서 재입궁하며 인현왕후는 장희빈이 원자(후일 경종)를 낳고 난 후 1689년 5월에 폐비된다. 헌데 드라마에서는 벌써 고인이 되신 대비가 멀쩡히 살아 있다. 또한 명성왕후는 숙종의 두창을 고치기위해 무당의 말을 듣고 치성드리고 한겨울에 찬물로 목욕한 후유증으로 사망하게 되었는데 드라마에서는 장희재가 독살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 가체문제
동이는 17~18세기 조선 숙종 시대가 배경인데 실제로는 첩지머리가 아닌 가체를 해야 맞다. 가체에서 첩지머리가 된것은 1756년(영조 32년)1월 16일이다[12]. 그러나 이것은 의도적인 고증 오류로, 지금까지 여러 사극을 찍으면서 여성 출연진들이 가체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하는 것을 겪어온 이병훈 PD가 여성 출연자들을 배려하는 의미에서 고증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첩지머리를 한 것.# 게다가 이후의 사극들은 동이처럼 여성 출연자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조선 전기 배경, 조선 후기 배경을 가리지 않고 가체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선 동이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 상황. 다만 최근 중국 사극에서는 속이 빈 가벼운 가체가 개발되어 쓰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극에서도 그런 빈 가체를 만들어 여성 출연진들도 배려하면서 동시에 고증오류도 피할 필요가 있다.

  • 인현왕후의 죄목
인현왕후의 죄목은 칠거지악 중 희빈 장씨를 투기한 것, 아들이 없는 것, 시부모를 기만한 것, 왕에게 거짓을 고한 것, 궁인들에게 붕당을 일으켜 혼란을 야기한 것, 원자(경종)가 태어났을 때 노여워한 것, 영빈 김씨가 퇴궁당할 때 위로는 커녕 재촉한 것 등이지, 희빈 장씨남인이 모함을 한 것이 아니다. 또한 남인 역시 인현왕후의 폐위에 반대하였다. 또한 인현왕후의 복위는 간신에게 모함당한 것이 아니라 조강지처에게 폐위라는 처분이 너무 가혹하다라는 동정으로 복위가 된 것이다.

  • 희빈 장씨의 죄목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모함하지 않았으며 명성왕후를 독살하려하지도 않았다. 또한 왕세자의 고명을 받으려 국가 기밀을 빼돌린 적도 없으며 숙빈 최씨나 연잉군을 죽이려고 든 적도 없었다. 이 드라마에서 장희빈의 대부분의 죄목은 허구이다. 또한 장희빈의 강등은 죄가 있어 폐위된 것이 아니라 전왕비인 인현왕후가 복위됨에 따라 국모가 둘일 수 없으므로 국법의 우선순위에 따라 후궁으로 밀려난 것이다.

  • 장렬왕후와 영빈 김씨와 명빈 박씨의 부재
언제나 장옥정의 편이 되어준 숙종 대의 대왕대비 장렬왕후, 숙빈과 마찬가지로 인현왕후를 많이 돕던 영빈 김씨, 숙종이 가장 사랑했던 아들 연령군의 어머니인 명빈 박씨가 각종 주요 왕실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았다.

  • 조정 인물들의 변경
서인의 수장 송시열, 김수항, 남구만이나 남인의 수장 민암같은 인물들이 대다수 드라마상의 가상인물들로 변경되었다.

  • 숙빈 아버지 최효원 사망시기
검계의 수장이었던 숙빈의 아버지 최효원은 드라마내에서 동이가 10살 무렵에 죽는데 실제 숙빈의 아버지 최효원은 검계의 수장도 아닐 뿐더러 1672년 숙빈이 세 살 때 사망한다.[13] 그리고 검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검계는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천민들을 돕는 의적이 아닌 살인, 강도, 약탈, 부녀자 겁간 등 형사사건을 일으키는 요즘의 조직 폭력배나 다름없는 단순 악질 범죄집단이었고 영조 때까지 출몰해 영조의 어그로를 끌었다...

드라마에서 숙원 첩지를 내리는 사람이 인현왕후로 나오는데 역시 고증오류. 실제 숙빈이 숙원이 된 시기는 1693년 4월 26일로 당시 중전은 인현왕후가 아닌 장희빈이었다. 인현왕후는 당시 폐비였고 중전으로 복위된 때는 1694년 6월 1일이다. 드라마에서 동이는 연잉군과 입궁 후 숙의로 책봉되고 인현왕후 사후에 숙빈으로 책봉되나, 실제 숙빈은 인현왕후 복위 다음날인 1694년 6월 2일 숙의에 책봉되고 1695년 6월 8일 귀인에 진봉되고 1699년 10월 25일 단종대왕 복위를 축하하는 기념으로 정1품 빈으로 책봉.

  • 숙빈의 첫 아들 영수(永壽) 사망 시기
숙빈의 첫 아들이자 숙종의 셋째 아들인 영수(永壽) 왕자는 1693년 10월 6일 태어나 1693년 12월 13일 두 달만에 사망한다.

  • 숙빈의 둘째 아들 영조 탄생과 입궁시기
숙빈의 둘째 아들 영조는 1694년 9월 13일 창덕궁 보경당에서 태어났다. 검계 문제로 쫓겨났던 동이가 사가에서 연잉군을 출산하는 장면이 오류로 지적받는 이유가 이것. 그리고 연잉군이 7~8살쯤 입궁하여 봉작받고 동이도 숙원에서 숙의로 책봉되는데 실제 영조는 보경당에서 태어나 1699년 12월 24일 연잉군으로 봉해지고 19살이던 1712년 2월 12일에야 출합한다.

  • 숙빈 최씨의 중전 추대
드라마에서 숙종은 인현왕후 사후 숙빈을 중전 추대할 생각이 있었고 동이의 요청으로 후궁이 중전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법령을 선포하는데 실제로는 장희빈 사사 전날인 1701년 10월 7일 선포하였다. 또한 숙종은 숙빈을 중전에 올릴 생각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희빈 사후 숙빈에 대한 견제책으로 1702년 인원왕후와 가례를 올렸으며 내명부를 진봉하며 일신했고 숙빈은 궁이 아닌 숙빈방 이현궁에서 지내게 된다.[14] 다만 숙종이 숙빈을 중전으로 책봉하겠다고 하자 숙빈이 그 말이 너무 황송하고 두려워 한겨울에 뜰에 엎드려 사양했다는 야사도 전해지고 있으므로 드라마는 이 야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두 여인 둘 다 노론이라는 같은 정치 성향의 기반으로 지지받고 있었기 때문에 후반부에 인원왕후와 숙빈 최씨가 대립하는 에피소드는 사실상 픽션 중에서도 배경조차 고려하지 않은 픽션에 가깝다.

5. 시청률

1화~30화는 최근들어 자료가 없어서 기록 못함(이때 당시 월화드라마 중에 최고의 시청률을 올렸다.)
회차 방영일 시청률
31회 2010.07.05. 26.1%
32회 2010.07.06. 27.5%
33회 2010.07.12. 26.3%
34회 2010.07.13. 27.4%
35회 2010.07.19. 24.3%
36회 2010.07.20. 25.3%
37회 2010.07.26. 24.4%
38회 2010.07.27. 25.7%
39회 2010.08.02. 21.5%
40회 2010.08.03. 21.9%
41회 2010.08.09. 22.7%
42회 2010.08.10. 21.3%
43회 2010.08.16. 22.7%
44회 2010.08.17. 21.6%
45회 2010.08.23. 24.3%
46회 2010.08.24. 25.1%
47회 2010.08.30. 27.3%
48회 2010.08.31. 27.4%
49회 2010.09.06. 27.7%
50회 2010.09.07. 25.3%
51회 2010.09.13. 24.5%
52회 2010.09.14. 24.5%
53회 2010.09.20. 22.7%
54회 2010.09.21. 19.7%
55회 2010.09.27. 24.4%
56회 2010.09.28. 24.4%
57회 2010.10.04. 22.2%
58회 2010.10.05. 22.6%
59회 2010.10.11. 24.4%
60회 2010.10.02. 24.3%

6. 평가

로맨스 사극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매우 만족스러운 작품이지만, 정통 사극이나 고증, 전체적인 완성도 측면에서 보면 매우 실망스러운 작품

인기도나 인지도에 비해 드라마의 작품성 자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드라마의 핵심이라 할만한 인물관계, 사건관계에서 치밀한 짜임새가 부족한 편이다. 인물이나 집단들간의 대립과 갈등 관계가 매우 단편적이고 캐릭터의 개성도 천편일률적이라 몇몇 인물들을 제외하면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대부분의 캐릭터가 의미를 잃고 병풍화되며 어쩔 수 없이 동이의 원맨쇼로 스토리가 진행되는데, 이 스토리의 전개 자체가 워낙 기록이 부족한 탓인지 깊이가 얕고, 억지로 갖다맞춘 식의 연결 등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정통사극이라 하기에는 크게 부족해 보인다.

차라리 배우들의 수준이 떨어진다거나 했다면 변명거리가 되었겠으나, 동이나 숙종을 제외하더라도 그 외 주, 조연 배우들도 한명한명을 보면 매력도 있고 작중 연기력 역시 상당히 출중한 편인데도 이러는 것을 볼 때 애초에 연출이나 각본 등 기본적인 드라마의 완성도 자체에 미진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드라마를 차근차근 보면 여러모로 크게 살릴만한 캐릭터들이 매우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대부분 병풍이 되어 묻히거나 캐릭터의 매력들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음을 느낄 수 있다. 연기력이나 배우의 부족이라기보단 애초에 스토리 구성, 인물관계 구성의 짜임새가 부족한 탓.

해서 이 드라마의 최대이자 거의 유일한(?) 강점은 숙종과 동이의 러브라인 로맨스이며, 이것이 여타 다른 많은 부족함에 불구하고 드라마가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게 한 원동력이라 할만하다. 초중반부까지 이어지는 정체를 숨긴 허당스러운 왕과 당돌한 천인 출신 여성의 아기자기한 로맨스가 이 드라마의 백미. 어설퍼보이기까지하는 스토리 전개 수준을 감안하면 동이는 정통사극이라기보단 차라리 한국 퓨전사극의 초창기 형태이자 가벼운 로맨스사극이라 보는쪽이 더 맞을 것이다.


[1] 본래 50부작이었으나 상대작과 나란히 10회분 연장했다.[2] 강한 의지를 가진 주인공이 갖은 역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이뤄내는 것이 주요 스토리이며, 주인공은 절대적으로 선하고 굉장히 뛰어난 능력을 가진 슈퍼맨이다. 또한 그런 주인공을 헌신적으로 사랑해주는 연인이 있고 극중 감초 격으로 개그 캐릭터들이 등장한다.[3] 이산의 주인공을 송연으로 놓고 바라보면 동이랑 차이점을 찾는 게 더 어렵다. 중견배우 이희도씨는 이산에 이어 동이에도 감초 역할로 출연했는데 다른 점은 데리고 다니는 젊은 애가 박대수에서 영달로 바뀐 것뿐이다.[4] 한창 숙종의 마음이 장희빈을 떠나 동이에게 옮겨갈 무렵 숙종을 만나러 간 장희빈이 숙종이 동이와 둘이서 노닥거리는 모습을 본게 무려 세 차례나 된다.[5] 김혜수표의 장희재는 다름아닌 선덕여왕에서 김서현을 연기했던 정성모가, 정선경표의 장희재는 길용우가, 또한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에서는 다름아닌 이덕화아저씨가 배역했다. 또한 동이 촬영 이후로부터 3년 후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는 원래는 푸른거탑의 싸이코 상병 역을 맡은 김호창에게 캐스팅 제의를 했으나 본인이 거절해서 고영빈으로 대체했는데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장희재는 문무겸비의 인물로 묘사되었다.[6] 뭐, 엄밀히 말하면 명성왕후의 죽음이 인현왕후가 폐서인 된 원인인건 사실이다. 단지, 그 시기가 바로 직후인지와 5년 후인지 그리고 그 폐서인을 한 주체이자 가장 큰 원인이 신하인지 왕인지는 정말 차이가 크다는 것.[7] 환국으로 역사대로라면 세력을 잃어야했을 남인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권력다툼을 한다(!!) 이게 무슨 대체역사 여기에 최철호가 폭행사건을 일으키는 바람에 그의 배역 오윤(역시 실존인물이자 민암의 조카 민종도가 모델이다)은 졸지에 공기화된다.[8] 여기에 두 연기자 모두 이소연과도 엮였다. 한효주는 봄의 왈츠에서, 배수빈은 결혼합시다천사의 유혹에서 각각 이소연과 함께 연기했다.[9] 《이산》에서 영조(이순재)가 어머니 숙빈 최씨(한효주)의 옥가락지를 손자 정조(이서진)의 연인 의빈 성씨(한지민)에게 주는 장면이 등장한다.[10] 이런 마지막 장면은 보통 동이가 무언가를 보거나 듣고 놀라는 장면이 대다수이다(...).[11] # [12] #[13] # [14] 1704년(숙종 30년) 4월 1일 ,1711년(숙종 3년) 6월 22일 조선왕조실록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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