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다른 뜻1]


유리 가가린
Yurii Gagarin
본명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
Юрий Алексеевич Гагарин
출생 1934년 3월 9일, 러시아 SSR 스몰렌스크
사망 1968년 3월 27일
국적 소련 파일:소련 국기.png파일:소련 국기.png
직업 우주비행사

목차

1. 개요
2. 상세
3. 일생
3.1. 우주 비행사가 되다
3.2. 지구는 푸르다
3.3. 세계 순회
3.4. 죽음
4. 기타


1. 개요

지평선이 보인다. 하늘은 검고 지구의 둘레에 아름다운 푸른색 섬광이 비친다.
- 유리 가가린


철의 장막 건너편에서 역사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인류가 우주에 진출했는데, 그 사람은 빨갱이랍니다.
- <지구에서 달까지> 1화 초반부에 나오는 뉴스속보


찰스 린드버그의 이름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대서양을 2번째로 횡단한 사나이의 이름을 누가 안단 말인가?[1]
-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로 갔을 때, 한 미국 국회의원이 분통을 터뜨리며 한 말[출처][3]


소련우주 비행사이자 군인이며 세계 최초로 우주에 나가 살아 돌아오는 것에 성공한 우주인.

2. 상세

Soviet Anthem 1984[4]

세계 최초의 유인우주선 계획인 보스토크 계획에 발탁되어 1961년 4월 12일에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유인 우주비행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아폴로를 위해 쏟아부었던 미국의 크고 아름다운 돈지랄은 소련에 대한 열폭이 첫째 원인이었기 때문에 만약 유리 가가린이 미국보다 먼저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돌지 않았으면 달착륙은 80년대 후반이나 90년대에 한두번 가고 말았거나, 아폴로 프로젝트도 연구 성과에 비해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낭비였기에 아예 역사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냉전이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실효성 없는 달착륙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 실제로 냉전 시기 이후로 인류는 단 한 번도 달에 가지도, 진지하게 시도한 적도 없다.

보스토크 프로그램은 사람이 타지 않은 7번의 우주 비행선 개발 비행 끝에 유인으로 발사되었으며, 유인 비행은 가가린의 비행을 포함해 6번 모두 성공적으로 끝냈다.

3. 일생

소련 스몰렌스크 주 그쟈츠크 시[5]에서 출생했으며 아버지는 목수, 어머니는 목장 노동자로 소젖짜는 일을 했고, 당시 소련사회의 순수한 노동자 계급 출신이었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 당시 그와 그의 가족은 독일군 치하의 소련에서 살았고 독소전쟁시기 가가린은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비행조종사의 꿈을 가지게 된 건 2차대전의 소련의 승리로 끝난 이후 다시 학교를 다니던 유년시절이었다.

보수적인 아버지는 학비가 들까봐 가가린이 도시로 나가서 학교를 가는 것을 그다지 원치 않았으나, 가가린은 "학교는 공짜에요!"[6]라고 말해서 허락을 받아냈고, 이후 가가린은 기술학교에서 금속제련 과목을 수료하였다. 그 뒤 공군에 입대한 후 MIG-15 전투기 조종사로 지내다 세르게이 코롤료프의 요구 조건에 의하여 선발되어 인류 최초의 우주인이 되었다.[7]

3.1. 우주 비행사가 되다

원래는 소련 공군의 MiG-15 조종사였으나, 키가 매우 작았기(157.4cm) 때문에 우주인의 이상적인 체격을 가졌다고 평가받아 보스토크 계획의 우주비행사 양성 프로그램에 선발되었다고 한다.[8] 사실 비행사관 후보생일 때, 작은 키 때문에 Yak-18 연습기의 깊숙한 콕핏에 시야가 가려서 착륙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 때문에 두 번이나 탈락할 뻔 했지만, 그의 비행실력을 아낀 교관이 좌석에 방석을 끼워주는 방법을 써서 시야를 확보시켜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으니, 작은 키 때문에 비행사가 되지 못할 뻔 했지만 우주비행사로 선발되는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우주비행사 후보생은 3000여명의 공군 파일럿들을 대상으로 선발된 20여 명이었는데, 가가린은 여러가지 비행 실력, 신체적 조건, 집중력, 그리고 인품까지도 이들 중 최상위권이었고, 게르만 티토프와 함께 최종으로 선발되었다. 티토프는 가가린에 이어 2번째로 우주비행을 했다. 가가린이 우연으로 최초의 우주 비행사가 된 것은 아니다.

3.2. 지구는 푸르다

그가 탄 우주선 보스토크 1호
궤도 비행 중 "지구는 푸르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또 다른 설로는 "지구는 푸른 베일을 감싼 신부와도 같다"고 했다는 설도 있다.[9] 정확히 말하면 착륙 후인 1961년 4월 12일자 이즈베스티야[10]에 실린 기사에 나온 말로 원문은 다음과 같다.
Юрий Гагарин рассказывает: небо очень и очень темное, а Земля голубоватая. Все хорошо видно.
유리 가가린이 말했다. "우주는 매우 어두웠으나, 지구는 푸르렀습니다.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였습니다."

참고로 유리 가가린이 우주 비행사로 선발이 될 당시 그의 계급은 상위였는데 이제껏 사람을 우주로 보낸 전례가 없었는지라 인간이 우주로 여행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소련군[11]에서는 유리 가가린을 우주선에 실어서 우주로 내보낸 직후 그의 계급을 상위에서 2계급 특진시켜서 소령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상 이것은 유리 가가린을 전사한 것으로 처리한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유리 가가린은 무사히 살아서 귀환했고, 그것을 그대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훈포장 대상자급 대우를 받아 대령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했는데 가가린이 사망 시 달고 있던 계급장이 대령이었다. 사망하면서 순직처리하여 소장으로 승진했는데, 사실 미국도 최초 우주인인 앨런 셰퍼드에게 최종적으로 소장, 중국도 양리웨이에게 소장 계급을 달아 준 것을 보면 가가린도 장군계급을 단 것이 어색한 것은 아니다.

여담으로 가가린이 착륙했던 장소는 원래 예정지에서 약 400km 떨어진 곳이었는데 통신 수단이 없어서 가가린은 지구에 돌아온 직후에 한동안 소련 당국과 연락할 수 있는 통신 수단을 찾아 헤맸다고 한다.

3.3. 세계 순회

1시간 29분간의 인류 역사상 첫 우주비행을 성공한 후, 그는 소련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영웅이 되었다. 가가린은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소비에트연방의회 대의원이 되었으며, 소련 최고 영예인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를 받았다. 소련은 자신들의 체제우월성 및 우주기술의 과시를 위해서 가가린을 전 세계에 보내 연설회 및 기자회견, 팬사인회 등을 열었다. 가가린은 30여개국을 방문했는데, 당시 냉전이 한창이었으나, 가가린은 공산권만 아니라 영국, 캐나다, 프랑스와 같은 서방국가에서도 대중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소련은 가가린의 미국 방문도 계획했으나, 국민 사기를 고려한 케네디 대통령의 명령으로 미국 방문은 불허되었다. 하지만 1965년 프랑스에서 제미니 4호의 승무원이었던 에드 화이트[12]와 제임스 맥디빗을 만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우주비행 2년만에 대위에서 대령에 이르는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되었다. 이후 우주비행사 훈련센터의 부센터장을 맡게 되었다.

우주에 갔다오기 전에는 일개 비행장교로서 대위에 불과했으나, 이렇게 갑자기 고속승진에 유명세를 타게 되었기 때문에 가가린은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고, 대중노출에 따르는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과음을 하기도 했다. 루머에 의하면 아내에게 불륜 현장이 발각되자 2층 건물에서 뛰어내렸다고도 하며, 이때문에 얼굴에 상처자국이 남았다고 한다.

한편으로 훗날 존 글렌이나 아폴로 11호닐 암스트롱버즈 올드린이 미국에서 높으신 분들에 의해 우주 비행이 금지되었듯이, 가가린 역시 소비에트연방 영웅이 위험한 우주 비행으로 목숨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높으신 분들에 의해 우주비행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래도 우주 개발에 있어 계속해서 참여했고 블라디미르 코마로프의 목숨을 앗아간 소유즈 1호 미션 당시 백업으로 근무했다. 당시 가가린은 우주선이 너무 위험하니 발사를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코마로프에게도 줄기차게 설득을 이어갔지만 끝내 발사는 강행되었는데...그것이 실제로...[13] 그래서 소련의 높으신 분들은 이런 코마로프의 사고를 보고 가가린의 목숨을 훨씬 중히 여기게 되어 우주 비행이 더욱 철저히 금지되었다.

3.4. 죽음

그 이후 가가린은 우주센터에서 일하느라 정지되었던 전투조종사 자격을 회복하기 위해 친구인 테스트 파일럿 세료긴과 훈련비행을 하다가 34살에 사고로 사망했다. 이때 그의 계급은 대령이었다. 이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존재하지만 단순사고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KGB는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조사했고, 소련 붕괴 후 공개된 당시 KGB 문서도 단순사고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가가린은 자신이 우주비행 중 잘못될 것을 걱정해서, 가기 전에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관련 기사

사망 후 소련의 영웅들이 묻히는 크렘린 벽 묘지에 안장되었고 소장으로 추서되었다.

4. 기타

  • 사생활면으로는 아내 발렌티나 사이에 두 딸을 두었는데 아내와 두 딸 모두 살아있다. 딸만 있었으므로 그들의 자손들은 대대로 가가린이라는 성씨를 쓸 수 있게 허락되었다.

  • 유명세가 폭발하던 시기엔 소련의 시골 오두막집에도 유리 가가린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즉, 성인급.[14]

  • 보스토크 1호 궤도비행 당시 최초로 먹었던 음식이 익힌 고기가 담긴 160g 튜브 2개와 디저트인 초콜릿이 담긴 튜브 1개로 인류 최초로 우주식량을 먹었고 이후 우주 식량의 출발점이 되었다.

  • 우주에서 가가린이 이탈리아 노래인 오 솔레 미오를 불렀다고 한다. 학교 음악 교과서에서 이 노래가 수록된 경우 웬만하면 가가린의 일화도 같이 적혀 있다.

  • "가가린이 조종하다가 사망한 비행기가 과부제조기로 유명했던 Su-24였다"는 잘못된 이야기가 있는데, 실제로는 MIG-15의 복좌 훈련형 기종(MiG-15UTI)이었다. 다만 철의 장막 건너편에서 미국에서 역시 희대의 과부제조기 F-104를 조종하다가 희생된 우주 비행사 후보생이 있기는 하다.[15]

  • 2001년 4월 12일 유리 가가린의 인류 최초 우주 비행 40주년과 NASA 우주왕복선(STS-1 컬럼비아) 최초 발사 20주년[16]을 기념하기 위해 유리스나잇 행사가 열렸다. 국내에서도 열렸다.

  • 2011년 4월 4일 가가린의 우주비행 50주년을 앞두고 ISS 엑스퍼디션 27/28 승무원들과 함께 발사된 소유즈 TMA-21 미션은 소유즈 부스터에 가가린의 그림을 그려넣었다. 사진 확대 필요

  • 가가린이 우주로 가기 전에 지구에다가 흔적을 남겨두고 간 뒤 이후 우주비행사들이 이 행동을 따라하는 전통이 생겼다고 하지만, 사실 이건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전투기 파일럿 사이에서는 범세계적 징크스의 일종. 한국 KF-16 파일럿들도 한다. 파일럿들의 명예를 위해 부연하자면, 위험하거나 중요한 임무 전에 어쩌다 하는 정도. 절대 비행시마다 하는 건 아니다.

  • 가나다순 덕분에 한국어로 출간된 세계인명사전을 펴보면 100% 확률로 맨 처음으로 나오는 사람이다. 1960~80년대까지 공산국가, 소련 위인이라면 기겁하던 시절에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바깥에서 지구를 본 우주인이라는 공로 때문에 빠짐없이 나오곤 했다. 그 시절 인명사전에서 러시아러시아 제국 시절 인물들이 주로 나왔는데, 톨스토이, 고골, 차이콥스키 같은 문화계 위인들이나 황제, 군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스탈린이나 블라디미르 레닌이 부정적으로 가끔 나오던 정도였다. 하지만 가가린만은 예외없이 소련 인물에서 유일하게 인명사전에서 긍정적으로 나온 인물이었다. 그만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를 지구 바깥에서 봤다는 위인이란 상징은 엄청났다.

  • NASA아폴로 15호에서는 미국과 소련의 순직 우주 비행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달에 알루미늄 판을 놓고 왔는데 그 중에 유리 가가린도 있다.

  • 가가린보다 먼저 우주에 간 우주 비행사가 있다는 음모론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보스토크 계획 문서 참조.

  • 영국의 밴드 퍼블릭 서비스 브로드캐스팅이 동명의 싱글을 2014년에 출시했다. 우주 경쟁 컨셉의 앨범 The Race For Space의 리드 싱글. 뮤비가 또라이같다.

  • Lady Heroin가 자신들의 스타일로 리메이크한 데이비드 보위의 명곡 Space oddity 뮤직 비디오에서 우주 비행사를 꿈꾸는 소년이 유리 가가린의 포스터를 거리 여기저기에 붙인다.

  • 프랑스의 전자음악 작곡가 장 미셸 자르는 로널드 맥로어에게 헌정했던 앨범 Rendez-Vous에 이어 2000년에 발표한 Metamorphoses에 Hey Gagarin이라는 곡을 실어서 그를 헌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앨범 발매 직전에 이집트에서 열린 The Twelve Dreams Of The Sun 공연에서 선행 공개한 바 있다.

  • 스타 트렉: 디스커버리리에서는 셰퍼드급 순양함 USS 가가린(USS Gagarin; NCC-1309) 호의 이름에 쓰였다. 영화판 스타 트렉 비욘드에서는 가가린 방사선대에서 실종된 USS프랭클린과 에디슨 함장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현재 러시아에서도 굉장히 인기가 많다. 러시아의 기념품 상점에선 레닌, 스탈린, 현 대통령 푸틴, 소련 관련 상품과 더불어 유리 가가린이 그려진 티셔츠를 비롯하여 관련 상품들을 자주 볼 수 있다.

  • 그가 쓴 자서전으로는 '지구는 푸른 빛이었다.'가 있다. 국내에도 2008년에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가가린의 전반적인 생애와 그의 첫 우주여행, 소련의 영웅이 되고 난 이후의 삶을 알 수 있다. 그외에도 옮긴이 해설로 러시아 우주개발역사, 부록으로는 세계우주개발 역사 그리고 한국의 우주개발 역사까지 있으니 개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1] 참고로 대서양을 2번째로 무착륙 횡단한 사람은 버트 힝클러(Bert Hinkler)이다. 무모하지만 꼼꼼하고 빈틈없는 조종사였다고 평가되며, 영국-호주 간 비행거리를 단축하려고 시도하다 1933년 이탈리아에서 사망했다.[출처] 라이프(잡지) 1961년 16호[3] 우주에 2번째로 간 사람은 앨런 셰퍼드(Alan Bartlett Shepard, Jr/1923~1998)이다. 당연히 가가린 만큼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알려진 수준인데 그도 그럴 것이 1971년 아폴로 14호를 타고 에 가서 발자국을 남긴 5번째 지구인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달에서 최초로 골프를 친 사람이다. 냉전 시대에 미국인으로서 더 위대하다며 열폭한 미국이 열심히 홍보해주고, 일찍 사고로 요절한 가가린과 달리 제법 오래 살면서 늘그막까지 살았으니. 하지만 80년대 한국 인명 백과 사전에서 가가린은 꼭이라고 할 정도로 자주 나왔지만 셰퍼드는 생략한 게 많았다. 되려 달에 처음으로 간 암스트롱이 더 자주 나오곤 했다. 당시 미국 과학잡지를 번안하여 국내에서 출판하던 '사이언스'를 보면 존 글렌(궤도비행), 앨런 셰퍼드, 닐 암스트롱, 샐리 라이드(미국 최초의 여성 우주인) 등 미국의 우주비행사 위주로 우주비행 약사를 소개하지만 거기에도 스푸트니크와 유리 가가린은 나온다.[4] 이 영상은 1984년 소련 국가 방송으로 약 56초 쯤에 유리 가가린의 모습이 나온다.[5] 지금은 그의 이름을 따서 가가린 시로 개칭되었다.[6] 소련에서는 교육비가 기본적으로 무료였다.[7] 코룔로프보단 소련 군부의 입김이 훨씬 셌기에 가능했다. 심사 당시 알렉세이 레오노프, 게르만 티토프, 유리 가가린 등 군부에서 심층적인 최종 심사를 했는데 가가린의 기량 및 능력, 그리고 결정적으로 출신성분이 평민 출신 노동자 집안이라 홍보하기엔 안성맞춤이라 만장일치로 선발되었다고 한다. 즉 다른 후보자들도 기량이 뛰어났지만 출신성분이 부자 가문이거나 반동, 불순 가문에 해당되면 얄짤없이 탈락됐다. 그래도 첫 발사 이후 알렉세이 레오노프가 인류 최초의 우주 유영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다른 후보자 일부도 이후에 우주여행을 했기에 소련의 첫 유인 발사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크다.[8] 미국의 첫번째 우주비행사 양성 프로그램인 머큐리 계획에서도 의도적으로 키가 작은 사람을 뽑았다. 지금도 우주비행사 선발 기준에 키가 6피트(182.88cm)를 넘으면 결격사유가 된다.[9] 근육맨 2세 궁극의 초인 태그 편에선 전자와 후자를 모두 채용해 소련 출신 초인 스푸트니크와 메테오맨이 마이클과 벨몬드라는 곰인형 초인을 압도하며 "위대한 소비에트 연방의 동지 유리 가가린이 우주에 올랐을 때 사람들은 그가 '지구는 푸르다'라고 말한 걸로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는 '지구는 푸른 베일을 감싼 신부와도 같다'고 말했지! 하지만 우리 소비에트 연방과의 우주 경쟁에서 패배했다는 걸 인정할 수 없던 미국은 이 아름다운 명언을 고작 푸르다는 말로 왜곡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10] 러시아의 일간지로 당시엔 소련의 국영지였다.[11] 정확히는 국방장관이었던 로디온 말리놉스키 원수의 제안[12] 이분은 미국인 최초로 EVA를 실시한 우주비행사이지만, 아폴로 1호의 화재때문에 1967년 순직한다.[13] 1967년 4월 24일 소유즈 1가 낙하산이 펴지지 않는 사고가 발생해서 탑승한 코마로프가 사망했다. 이는 인류 최초의 우주인 사망사고였다.[14] 그도 그럴 것이 인간들 중에서 최초로 우주란, 도달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곳에 최초로 도달했고 지구의 진짜 모습을 보았으니 성인급으로 취급받아도 뭐라 할 말이 없다.[15]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우주 비행사로 선발되고 최초로 우주에 나간 흑인이 될 수 있었던 로버트 헨리 로렌스 2세(Robert Henry Lawrence, Jr.) 소령.[16] STS-1 미션의 날짜 자체가 보스토크 1호 20주년과 같다. 원래 이틀 전에 발사하기로 되어있었지만 이런저런 문제로 미뤄지다가 우연히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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